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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도매

자서전-나의 청년 20대 다양한 경험을 할 시기

by 네옴1984 2023. 11. 5.

저는 현재 나이 40살이면서 베이커리 사업을 하고 있다.

누군가 사업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아마존에서 물과 칼만 쥐어지고 

끝없는 정글을 헤쳐나가야하는 마음가짐이였다

한마디로 걍 죽을까? 하는 심정도 든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나하나 헤쳐나가보자는 심정으로 진행중이다.

나의 청년기 20대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12년동안 우리가 들어온 교육은 좋은 직장인이 되기위한 최단 루트였다

이건 스스로 깨닳기 힘든 관점이다.

마치 매트릭스 영화의 빨간약을 먹은 느낌이다.

나의 부모님은 정말로 열심히 삶을 살아오셨고 그 시대에 맞는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중산층에서 캠핑카를 끌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여느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내가 백수시절을 잠깐 보낼때 공무원 공무를 추천하셨고

월 200만원을 못벌때는 버스운전기사를 추천하셨다 서울 버스운전기사의 월급은 350만원이다.

이때마다 강한 유혹의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항상 나의 메타인지는 확장성과 먼미래를 보라고 나에게 대답해왔다.

파리크라상에서 베이커리 근무할때 선임들에게 '나중에 뭐하실거예요?' 물어보면 다들 '죽지못해 일한다','아이때문에 일한다' 이런 답변만 받아왔다.

나의 인생도 20년뒤 별반 차이 없을거 같아 1개월 고민하고 그만두었다.

뭐가 있어서 그만둔게 아니다. 

지금생각하면 무모했지만 잘한 선택이였다.

 

고등학생때부터 사업을 하자

사업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없다.

지금당장엔 게임속 캐릭터처럼 '뉴비'의 심정으로 누더기옷과 나무막대기 정도 들고 있는 수준이다.

이유는 사업을 우린 교육 받지 못했다.

단순히 12년 교육동안 좋은 직장인이 되기위한 교육을 들었다.

나이 40이되니 그 높아 보였던 선생님들 또한 직장인 교육을 받았고 갓 졸업한 20대 분들이며 나이가 있어도 지금의 내 또래였으니 말다했다.

물론 그런 코스를 밟아온 삶 또한 훌륭하고 있어야할 존재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결국 어떤 교육을 받든 우린 직장인이 된다라는 현실이다.

이걸 탈피하고 중3까지 기초수학, 과학을 배웠다면 고3부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면된다.

게임 캐릭터도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하듯 사업가 또한 하나의 직업군일 뿐이다.

자! 소크라테스가 말한것처럼 '너 자신을알라' 이게 지금나이에 생각하니 정말 진리중의 진리다.

무엇을 시작하든 지금 나의 상태를 알아야하며 내가 가장 잘 할수 있는것을 알아야한다.

내가 고등학교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할까?

 

씨드머니의 중요성

내가 고등학생이라면 당연히 친구와의 관계 이성과의 관계가 우선순위 일거다.

이런 경험 또한 정말 소중하고 귀한 추억이다. 

그래도 시간은 남을 것이다.

이때 우린 게임속 '뉴비' 처럼 퀘스트를 깨며  나아가야한다.

게임에선 퀘스트가 순서대로 존재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현실에선 씨드머니란 기초체력과 같다. 무일푼으로 사업을 할수 있다.하지만 그만큼 게임에서도 빨리죽는 만큼 현실에선 마음이 조급해진다.최소한 씨드머니 2000~3000만원을 모으자.파리크라상 근무당시 나는 월 130만원에 보너스 까지합치면 월 160만원정도 받았다.월100만원은 저금하고 10만원은 부모님용돈, 10만원은 차비, 10만원은 밥값을 쓰고 나머지 30만원으로 친구들을 만났고 30만원을 다 쓰면 친구들조차 만나지 않았다.이렇게 2년동안 모은돈이 2000만원이 넘었지만 여러갈림길중 선택을 잘못하여 그 돈을 다 날린꼴이되었다.그래서 나는 나이30살에 우유배달을 했다. 이때 돈이 없어 남양주에서 살고 있던 나는 겨울날 중고 오토바이를 구매하기위해 광명시까지 가서 구매했다.판매하는 분이 '어디까지 가냐'고 하여 나는 천진난만하게 '남양주까지 간다'고하니 '미쳤냐'고 하였다.나는 어렸을때부터 일단 '하고자하면 길이 보인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단순히 오토바이가 필요했고 내가 가지고있는 45만원에 맞는 오토바이가 광명시에 있었기 때문에 갔을 뿐이였다. 내가 간과한 부분은 오토바이의 상태와 겨울이라는 날씨 였다.이때 오토바이는 고속도로를 못탄다는 것 조차 모를때였다.서울 상동역쯤 운전하고 오니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나 추웠다.그해 겨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날이였다.입고있던 패딩을 거꾸로 입으며 추위를 막았지만 달리는 오토바이의 겨울 바람은 너무나 날카로웠다.도저히 안될거 같아 상동역 순대국집에 갔다. 이때 손도 안펴지고 다리도 제대로 안펴져서 겨우겨우 들어가서 서럽게 순대국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그래도 나는 다시 직장생활로 돌아가기 보단 오전에 먹고살정도의 돈을 벌면서 새로운일을 하길 간절히 바랬고 새로운 일인 우유배달을 했다.물론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우유배달을 총 6개월동안 했다. 이때 가장 내가 반드시 결단코 성공하리라 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우유의 크기가 다양하고 네모난 우유와 둥근우유가 있다는것을 처음알았다.어느정도 길도 익숙해지고 고객집도 순서대로 잘 가져다줄때 도로에서 인도로 올라가야하는 상황이 발생됐다. 아무 거리낌없이 도로에서 인도를 대각선으로 올라가는데 오토바이가 넘어졌다.손이 까지고 옷도 까졌다. 하지만 날 돌볼 정신이 없었다.  둥근서울우유가 언덕을 타고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우유를 다줍고 나니 3초간 현타가 오면서 서러움이 복받쳐올랐다.하염없이 울었고 또 울었다.내가 나이 30에 뭐하고 있지? 란 자괴감이 들었다. 이때 내 마음이 까지고 또 까졌고 어느새 그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며 지금현재는 단단해졌다.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다.무슨일을 하든 씨드머니를 모아 사업을 해라.꼭 성공하지 못할수 있다.사업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하지만 이때 배우는 단단한 마음과 정신은 훗날 나의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건 확실하다.

 

이처럼 나의 20대는 대학교졸업, 해병대 전역, 파리크라상 근무, 다양한 알바들을 하며 경험을 축적한 시기였다. 단순히 기술만 익혔다면 지금처럼 나의 사업을 할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든다.나 또한 그렇지만 요즘 인스타나 유튜브에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기에 나의 삶을 비춰봤을때 조급함이 느껴진다.비교하지말고 불안해하지말자.그걸 자양분으로 활용하자.